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융단, 모전, 양탄자.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는 카펫(Carpet)은 마룻바닥에 깔거나 벽에 거는 인테리어용 천을 뜻한다. 냉랭한 기후를 띄는 북미나 서유럽 등에서는 실내 인테리어의 보편적인 바닥재지만, 한국에서는 최근 집콕족이 늘며 각광받기 시작했고 러그(Rug)라는 이름으로 혼용되고있다. 카펫은 서아시아의 유목민들이 보온을 위해 양모, 견사, 무명 등을 두텁게 엮어 짠 모직물에서 기원한다. 천의 조직을 만드는 날실에 씨실 또는 색실을 묶어 그 끝을 자르면 특유의 까슬한 보풀이 생기는데, 이는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동물의 털을 가미해 다양한 형태로 진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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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기 왕실의 비호(庇護) 하에 예술품이 생산되던 때가 있었다. 특히 산지에 따라 특색을 갖춘 카펫이 페르시아와 오스만 제국을 중심으로 명성을 떨쳤다. 이슬람 문화권에서 카펫은 장식 용도를 넘어 메카(Mecca)로 순례길을 떠나는 낙타의 등에 실렸다. 휘황찬란하게 꾸며진 마흐말(Maḥmal)은 술탄이 백성에게 자신의 권위를 보여주기 위한 가마로, 금·은색의 꽃과 아랍 문자를 수놓은 비단 덮개를 사용했다. 카펫은 17~18세기 십자군 원정 이후 이슬람권과 무역이 활발해지면서 유럽에 도입됐다. 호화스럽고 우수한 품질의 카펫은 동방의 신비로움이 녹아 있어 유럽인들의 눈을 사로잡기 충분했다. 이들은 사치품으로 카펫을 수집하고, 궁정과 저택의 벽에 걸거나 가구를 덮는 데 사용했다. 카펫뿐 아니라 ≪천일야화(千一夜話)≫의 신비로움이 깃든 중동의 패션과 음악, 문학 등 당시 유럽에는 투르크풍(Turquerie) 생활방식이 만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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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빅토리아 시대의 고위 공직자는 자신의 집무실 바닥에 카펫을 깔았다. 누군가 그 위를 밟고 서 있다는 것은 그가 상관으로부터 꾸중을 듣거나 소환되었음을 의미하며, 'on the carpet'에는 '고려 중인, 심의 중인'이라는 뜻도 있다. 'sweep under the carpet'은 '수치스러운(난처한) 일을 숨기다'라는 숙어로 'sweep' 대신 'brush'를, 'carpet' 대신 'rug'를 쓰기도 한다. 황급히 감추고 싶은 것을 양탄자 밑으로 집어넣던 사람이 많았기 때문일까, 20세기 중반부터는 널리 쓰이는 말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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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d Carpet’은 귀빈을 영접할 때 맨땅을 밟지 않게 하려는 극진한 환영과 대접을 상징한다. 기원전 458년 그리스 극작가 아이스킬로스가 쓴 비극 ≪아가멤논≫에서 유래됐다. 그리스 도시국가 아르고스의 왕인 아가멤논이 트로이 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귀환할 때, 그의 아내가 '신의 길'을 상징하는 붉은 카펫을 깔아 그를 맞이했다고 전해진다. 유럽 역사에서 전통적으로 빨간색이 권위를 상징해 귀족과 왕실에서만 사용됐다고 하는데, 이는 중세시대 염색 공장에서 가장 비싼 색이 빨간색이었기 때문이다. 카펫은 벨벳처럼 컬러가 오묘하게 바뀌는 할르(Halı)와 평직으로 직조해 앞뒤가 동일한 킬림(Kilim)으로 나뉜다. 킬림의 종류인 제짐(Cecim)은 바탕색으로 먼저 카펫을 짜고 그 위에 털실로 수를 놓아 입체감이 뚜렷하며, 페르시아 양식의 비단 재질 수막(Sumak)은 단색 킬림 바탕에 색실로 무늬를 만드는 등 복잡한 공법이 사용된다. 튼튼한 카펫은 수백 년이 지나도 색이 바래질 뿐, 모양이 흩어지지 않는다. 빈티지할수록 고풍스러움이 묻어나 오래된 카펫이 비싼 경우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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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펫은 종종 러그와 혼동된다. 일반적으로 카펫을 마루에 까는 것으로 정의하고 러그를 카펫보다 질이 낮거나 작은 사이즈를 말한다. 래그 러그(Rag Rug)는 천 조각을 엮거나 짜서 만든 깔개며, 욕실·침실 또는 아이 방 등에 사용한다. 퍽트 러그(Fucked Rug)는 엉성한 천에 굵은 색실로 수를 놓듯 커다란 무늬를 띄는 값싼 깔개를 뜻한다. 오늘날 카펫은 심플한 인테리어와 매치하는 원 컬러가 선호되지만, 과거에는 화려한 패턴이 강세였다. 카펫에 나타난 추상적인 도형과 모티프는 주로 신화적인 이야기를 담았다. 인간 세계와 천신을 이어주는 전령인 새는 희소식을 전하는 상징으로 신성시됐으며, 가시 풀과 보리 이삭은 왕성한 생명력과 번식력을 가진 잡초로 집안에 풍요로움을 깃들인다고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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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기억을 수놓는, 카펫&러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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